17년 야전의 중압감을 차가운 평정심으로 바꾼 내면의 기록
Prologue. 리더의 밤은 언제나 불안과 함께 온다
수백억, 수천억 원 단위의 손익(P&L)을 통제하고, 백척간두에 선 위기 상권을 수술해야 하는 사령관의 자리는 외롭다. 낮 동안의 치열했던 현장 지휘가 끝나고 밤이 찾아오면, 리더의 어깨 위에는 불확실한 미래와 조직원의 생계라는 무거운 중압감이 차갑게 내려앉는다.
"어떻게 해야 이 침체를 뚫어낼 것인가?"
"내가 내린 이 의사결정은 과연 옳았는가?"
사람들은 리더가 언제나 확신에 차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솔직한 고백건대 리더 역시 인간이기에 순간순간 불안이라는 불청객을 맞이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불안에 휘둘려 경솔한 판단을 내리는가, 아니면 불안을 고요히 성찰하여 새로운 동력으로 전환하는가일 뿐이다.
내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펼쳐드는 책은 2,500년 전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주고받은 대화록, 바로 《논어(論語)》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옛날 거친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갔던 스승과 제자들의 문장이 차가운 호수 바닥과 같은 평정심을 선물한다.
Chapter 1. 學而時習(학이시습) : 배움은 현장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배우고 제때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논어(論語)》 첫 구절로 너무나 익숙한 이 문장을 나는 오랫동안 오해했었다. 단순한 '공부의 즐거움'을 뜻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17년 간 수도권, 충청, 제주, 울산의 야전을 누비며 비로소 깨달았다. '배움(學: 학)'이란 지식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요, '익힘(習: 습)'이란 그 지식을 불확실한 현장에서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천(行: 행)하는 행위라는 것을.
도서 지역 특유의 물류 병목으로 대리점들이 이탈하던 제주 권역에 투입되었을 때, 머릿속의 이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본사 SCM 부서와 주간 크로스오버 TF를 결성하고 배송 프로세스를 매일 새로 기획하여 현장에 적용하는 '실천의 반복'만이 311% 수직 성장이라는 기적을 만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문제를 만나거나 방법을 알아도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을 때, 나는 이 문장을 암송한다. 리더의 배움은 책상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고 수술하며 익힐 때, 리더의 불안은 비로소 확실한 실행력으로 바뀐다.
Chapter 2. 回也不愚(회야불우) : 경솔한 반박 대신 조용히 성찰하는 지혜
"내가 안회(顔回)와 온종일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무런 반박도 없어서 어리석은 줄 알았다. 그러나 물러간 뒤 그의 생활을 살펴보니 충분히 실천하고 있었다. 회(回)는 결코 어리석지 않구나! (回也不愚: 회야불우)"
조직을 리딩하다 보면 매사 예민하게 굴며 별것도 아닌 일에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이들을 만난다. 이른바 '프로불편러'라 불리는 이들은 회의 때마다 "이건 옳지 않아, 나는 동의할 수 없어"라며 반박하는 것만이 자신의 존재감과 유능함을 증명하는 길이라 착각하곤 한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박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깊은 생각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공자가 가장 아꼈던 제자 안회(顔回:)는 달랐다. 스승의 가르침에 무조건 복종한 것이 아니라, 질문을 내던지기 전에 잠시 시간을 들여 스스로 깊이 생각했다. 배울 점은 즉시 현장에서 실천하고, 고쳐야 할 부분은 곰곰이 고민하여 스스로 답을 찾은 뒤 행동으로 증명했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탄복한 '회야불우(回也不愚:)'의 본질이다.
질문을 받았을 때 곧바로 답을 내놓으려 애쓰거나, 내 의견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상대와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얼굴빛을 좋게 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의 화려함보다, 조용히 문제를 해부하고 실행으로 보여주는 안회(顔回)식 소통이 소통 비용을 줄이고 조직의 본질적 가치를 세운다.
Chapter 3. 君子不器(군자불기) : 고정된 틀을 깨는 안티프래질(Anti-fragile)의 리더십
"군자는 한 가지 용도로만 쓰이는 그릇이 아니다 (君子不器: 군자불기)"
시장은 끊임없이 변한다. 어제의 성공 방정식이 오늘의 치명적인 독이 되는 시대다. 옛것을 고수하며 관성에 안주하는 리더는 쉽게 깨어지는 그릇과 같다. 헨리 포드는 "나는 두 손을 고용하고 싶었을 뿐인데 어째서 머리가 함께 오는지 모르겠다"며 노동자를 기계의 부품으로 보았지만, 현대의 리더십은 달라야 한다.
공자가 말한 "군자불기(君子不器:)"는 군자가 규격화된 도구가 아니라는 휴머니즘이자, 불확실한 세계에서 유연하게 변화를 모색하는 '안티프래질(Anti-fragile)'의 선언이다.
윗자리에 있는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첫 번째 덕목은 바로 '너그러움(居上不寬: 거상불관)'이다. 아랫사람에게 관대하고 포용적인 태도를 취할 때 조직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몰입한다. 또한, 직급을 무기로 충성을 강요하지 않고 예(禮)로서 인재를 대할 때(君使臣以禮: 군사신이례), 비로소 진정한 상하동심(上下同心)의 시너지가 발발한다.
Epilogue. 人不知而不溫(인부지이불온) :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 내면의 아비투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우리가 살면서 타인과 충돌하고 다투는 원인의 대부분은 명예, 이익, 그리고 사소한 체면 때문이다. 얕은 자만심에 취해 아첨하는 간신들에 둘러싸여 현실을 오판했던 송(宋)나라 휘종(徽宗)처럼, 우월감을 만끽하려 애쓰는 리더는 스스로 굽은 길을 걷게 된다.
진정한 어짊(仁: 인)은 사람과 사람이 진심으로 연결될 때 피어난다. 마음이 둔해진 사람은 자신의 신분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격식을 이용하지만, 내면이 풍부한 사람은 과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조용한 부(Quiet Luxury)'이자 리더의 깊은 아비투스다.
일을 완벽하게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거나, 오해의 시선이 날아들 때 나는 가만히 나지막이 주문을 외운다.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내면의 고귀한 기준과 호수 바닥 같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불안을 동력으로 삼아 오늘도 현장에서 묵묵히 답을 찾아가는 일, 그것이 내가 논어(論語)에서 배운 리더의 참된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