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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삼형제의《키노(KINO)》에서 스무 살 조카 (유상화)의 시각 디지인으로: 박찬욱의 《올드보이》를 읽다

[Curator's Note]

어릴 적 큰형은 매월 영화잡지 《키노(KINO)》를 빠짐없이 수집하며 시네필의 꿈을 꿨고, 그 영향 속에서 자란 나 역시 영화와 음악의 세계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그 피를 이어받은 스무 살 큰조카가 원하는 대학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하여 visual & narrative 컬럼 잡지를 제출했다. 한국 영화사의 불멸의 금탑인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재해석한 조카의 과제물(아래 9장의 이미지 아카이브)을 보며, 삼대를 관통하는 시네마적 유전자의 깊이를 실감한다. 조카의 독창적인 시각 언어 레이아웃과 나의 인문학적 비평을 결합하여 이 기록을 서재에 남긴다.

1. 비극의 오프닝: 붉은 망치와 어둠의 레이아웃

영화 《올드보이》(2003)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Grand Prix) 수상을 넘어, 21세기 세계 영화사가 가장 매혹당한 '비극의 시각화'다.
조카가 완성한 컬럼의 첫 페이지(Cover)는 이 작품의 시각적 정수를 한 화면에 집약한다. 칠흑 같은 어둠(Black)을 찢고 솟아오른 붉은색(Red) 타이포그래피 'OLDBOY', 그리고 무기이자 자해의 도구, 동시에 복수의 아이콘인 장대망치를 손에 쥔 차가운 수트의 질감.
이 이미지는 단순한 포스터의 재현이 아니다. 오이디푸스적 운명의 굴레에 사로잡힌 한 인간이 스스로 괴물이 되어 가는 과정을 가장 격조 높은 시각적 긴장감으로 포착해 낸 시각디자인의 백미다.
[Film Credit & Craftsma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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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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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박찬욱, 임준형, 황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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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임승용, 김동주, 한재덕, 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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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정정훈, 심경원, 이정민, 주성림, 유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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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류성희, 양홍삼, 이청미, 우승미, 한상민, 유제형, 정현철, 한성원, 류권, 유용주, 김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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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조영욱, 최승현, 심현정,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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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김상범, 곽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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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효과: 신중윤, 심재윤, 홍현철
거친 질감으로 새겨진 '올드보이' 타이포그래피 아래 나열된 크레딧은 한국 영화 최고 거장들의 이름이다. 정정훈의 카메라, 류성희의 압도적인 미장센 벽지 패턴, 조영욱과 이지수의 애절한 현악 사운드("The Last Waltz")는 이 비극을 단순한 장르 영화가 아닌 '미학적 묵시록'으로 끌어올린 원동력이다.

2. 15년의 감금, 5일의 추적: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산다해서 오.대.수."

"15년의 감금, 5일의 추적 / 준비됐나. 너무 오래 기다렸어 / 대결의 끝, 하나는 죽는다"
"내 이름이요,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산다해서 오.대.수.라구요"
술 좋아하고 떠들기 좋아하는 오.대.수. 본인의 이름 풀이를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라고 이죽거리는 이 남자는 아내와 어린 딸아이를 가진 지극히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어느 날, 술이 거나하게 취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존재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납치, 사설 감금방에 갇히게 되는데...
옥상 난간에 매달린 사내의 넥타이를 잡고 덤덤하게 말을 건네는 오대수의 모습, 그리고 감금방의 차가운 철문 틈 사이로 배출되는 배식구 너머의 눈빛. 영화는 시작과 함께 평범한 일상의 세계(Ordinary World)를 단숨에 파괴하고, 그를 서사시적 수용소로 내던진다.

3. 악행의 자서전과 7.5층의 수수께끼

"그 때 그들이 '십오년' 이라고 말해 줬다면 조금이라도 견디기 쉬웠을까?"
언뜻 보면 싸구려 호텔방을 연상케 하는 감금방. 중국집 군만두만을 먹으며 8평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텔레비전 보는 게 전부. 그렇게 1년이 지났을 무렵, 뉴스를 통해 나오는 아내의 살해 소식. 게다가 아내의 살인범으로 자신이 지목되고 있음을 알게 된 오대수는 자살을 감행하지만 죽는 것조차 그에겐 용납되지 않는다.
오대수는 복수를 위해 체력 단련을 비롯, 자신을 가둘만한 사람들, 사건들을 모조리 기억 속에서 꺼내 '악행의 자서전'을 기록한다. 한편, 탈출을 위해 감금방 한쪽 구석을 쇠젓가락으로 파기도 하는데.. 감금 15년을 맞이하는 해, 마침내 사람 몸 하나 빠져나갈 만큼의 탈출구가 생겼을 때, 어이없게도 15년 전 납치됐던 바로 그 장소로 풀려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누군지, 왜 가뒀는지 밝혀내면... 내가 죽어줄게요"
우연히 들른 일식집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어버린 오대수는 보조 요리사 미도 집으로 가게 되고, 미도는 오대수에게 연민에서 시작한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가게 된다. 한편 감금방에서 먹던 군만두에서 나온 '청룡'이란 전표 하나로 찾아낸 7.5층 감금방의 정체를 찾아내고... 마침내 첫 대면을 하는 날 복수심으로 들끓는 대수에게 이우진(유지태)은 너무나 냉정하게 게임을 제안한다.
자신이 가둔 이유를 5일 안에 밝혀내면 스스로 죽어주겠다는 것. 대수는 이 지독한 비밀을 풀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 미도를 잃지 않기 위해 5일간의 긴박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야 한다. 도대체 이우진은 누구이며, 이우진이 오대수를 15년 동안이나 감금한 이유는 뭘까? 밝혀진 비밀 앞에 두 남자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4. 멈출 수 없어진 맹렬한 열기의 복수극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올드보이》는 처절한 복수극을 다룬다. 하지만 그 복수극은 주인공 오대수의 것만이 아니다. 이곳에서의 캐릭터들은 모두 각자의 복수를 위해 움직인다. 아니 사실 그들에게 복수는 목적이 아니었다. 복수는 자신들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버렸다.
각자 다른 이유로 서로를 향한 복수라니, 참으로 참혹하고 아름다운 비극이다. 오대수는 15년간 갇혔다. 탈출과 탈출 후 복수를 위해 훈련과 탈출의 준비를 해두었다. 하지만 갑자기 해방된다. 그렇게 오대수는 자신을 왜 가두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복수를 행해간다.
정정훈 촬영감독이 담아낸 유명한 복도 롱테이크(Long-Take) 액션 씬은, 단순한 타격감의 전율을 넘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복수의 무거움과 피로감을 고스란히 육체성으로 증명해 낸다.

5. 완벽한 복수와 작렬하는 구원

"자, 복수를 하느냐. 이유를 알아내느냐. 아이고, 이거 큰일났네, 큰일났어. 15년 동안 당신을 지켜봤어요. 덕분에 그동안 잘 지낸 셈이야. 심심하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고. 상처받은 자한테 복수심만큼 잘 듣는 처방도 없어요. 한 번 해봐. 15년간의 상실감. 처자식을 잃은 고통... 이런 거 다 잊어버릴 수 있을 거야. 다시 말해서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하지만, 복수가 다 이뤄지고 나면 어떨까. 아마 숨어 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올 걸?"
오대수의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인간은 이우진. 사실은 모두 그에게서부터 시작된 이야기. 오대수가 가져야 할 의문은 '왜 가두었는가'가 아닌, '왜 15년만에 풀어준 것인가'였다. 15년. 조력자 미도가, 오대수의 딸이 성인이 되는 시간.
올드보이의 화자인 오대수의 복수는 처참히 부숴지고, 이우진의 복수는 작렬히 성공한다. 그렇지만 이미 이들에게 복수는 삶의 이유 전부가 되어버렸다.

6. 혀를 나불댄 자의 참회, 그리고 머리를 날려버린 완결

"...나요. 이제 무슨 낙으로 살지?"
이우진은 이제 삶의 의미, 이유, 목적이자 전부가 끝났다.
"누나하고 난,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요....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
이 이우진의 거대한 복수극은 끝나지 않았다. 이우진의 복수가 끝나면서 역설적으로 진짜 복수가 시작되었다. '오대수, 넌 알고도 사랑할 수 있냐. 너도 한번 이 고통을 가져보아라. 네가 한번 혓바닥으로 나불댄 그 사랑을 네가 가져봐라. 그것이 나의 진짜 복수다. 오대수.'
이우진의 완벽한 복수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인간으로서의 이우진의 삶은 이제 완전히 파괴되었다. 모든 것이, 몸, 재력, 15년간의 인내, 목적, 인생의 이유, 모든 생각의 원천, 그리고 자신과 누나까지, 모든 것이 복수만을 위해 양초처럼 태워가며 달려왔었다.
그렇지만 이제 복수는 끝났다. 이우진은 자신의 누나를 놓았던 것처럼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마지막 복수의 대상은 이우진, 저 자신이었을까.

7. 오이디푸스 신화와 "살 권리"의 인문학

"나는 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살아가는 놈이라서 오대수다"
"오늘도 역시, 대충 수습이 안 된다. 난 이제... 괴물이 돼버렸다. 이 복수가 끝나고 나면, 오대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오대수라는 이름은 작중에서는 오늘만 대충 수습하면서 살자는 의미라고는 하지만 당연히 진짜 이유가 있다. 이름 자체가 이 작품을 관통하는 이름, 오이디푸스(Oedipus).
오이디푸스는 엄마와 아들의 관계, 오대수는 아빠와 딸의 관계. 더 나아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부적절한 관계 전체를 상징한다고 보여진다. 영화 극초반에 나온 강아지와 함께 투신을 하려고 한 강아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수간남, 그리고 친누나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이우진, 그 이우진의 계획으로 딸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게 된 오대수까지.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수간남이 말했듯이, 마치 이 작품은 사회적 통념에 의해 짐승이 된 자신들이 살아갈 이유와 권리를 찾아나서는 여정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작품은 부적절한 행위들을 한 그들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주어진 살 권리는 그저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던 복수의 길뿐이었다. 모든 파오(죄업)를 짊어지게 된 오대수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이자,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딸만 남게 되었다. 오대수는 진실을 아는 괴물을 지우기 위해 최면술사를 고용한다.

8. 몬스터의 죽음과 설원 위의 미소: "사랑해요 아저씨"

"....나무가 서서히 콘크리트 기둥으로 변합니다. 여기는 이우진의 펜트하우스 안입니다. 적막한 밤이네요. 창가로 걸어가는 당신의 발소리가 실내를 울립니다. 실내등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이제 내가 종을 울리는 순간 당신은 이제 두 사람으로 나뉩니다. '비밀을 모르는 당신'의 이름은 '오대수', '비밀을 간직한 당신'의 이름은 '몬스터'예요. 종이 또 한번 울리면 몬스터가 뒤돌아 걷기 시작합니다. 한 걸음에 일년씩 늙어갑니다. 결국 몬스터는 일흔살에 죽게 됩니다. 걱정할 건 없어요, 매우 편안한 죽음이니까요. 행운을 빕니다."
"사랑해요 아저씨"
흰 설원 위, 붉은 모자와 스카프를 두른 오대수를 뒤에서 감싸 안는 미도. 최면을 통해 '비밀을 아는 몬스터'를 죽이고 '비밀을 모르는 오대수'로 돌아왔는가?
미도의 "사랑해요 아저씨"라는 고백 뒤에 이어지는 오대수의 표정은 웃음인가, 울음인가. 괴물을 지우고 구원을 얻은 자의 평안인가, 아니면 지워지지 않은 진실의 고통을 앎면서도 참아내는 자의 괴로운 미소인가. 박찬욱 감독이 던진 이 열린 수수께끼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참혹한 엔딩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