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익한 《거인의 노트》를 읽고 : 17년 차 전략가의 기록과 성장에 관한 성찰
프롤로그 :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액체 상태의 생각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아이디어와 통찰, 그리고 수많은 고민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해질녘이 되면 아침을 가득 채웠던 그 수많은 생각들은 어디로 증발했는지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면의 잠재성은 본래 액체(Liquid)나 기체(Gas)의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형태가 없고 잡히지 않으며, 잡아두지 않으면 순식간에 흘러내려 사라져 버린다.
김익한 교수의 《거인의 노트》를 다시 펼쳐 들며, 나는 리더와 개인의 차이를 만드는 가장 본질적인 메커니즘을 다시금 자각했다. 그것은 바로 '내면의 액체 상태를 명확한 고체(Solid) 상태로 만드는 기술, 즉 기록(Record)'에 있다는 사실이다.
기록은 단순한 메모나 일상적인 메모 적기 행위가 아니다. 흘러가는 삶의 소음 속에서 나만의 원석을 건져 올리는 작업이자, 나라는 인간의 역사와 지혜를 구축하는 가장 강력한 실천이다.
1. 3단계 담금질과 양질전화 : 기록은 재능이 아니라 '습관'이다
"사람들은 창조적 기획을 굉장히 뛰어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착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기획은 재능보다는 습관에 가깝다. 반복하다 보면 늘고, 반복해 봐야만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뛰어난 통찰이나 전략적 기획을 번뜩이는 '천재성'의 영역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1만 4천 쪽의 노트, 이삭 뉴턴과 이순신 장군의 일기가 증명하듯, 세상의 모든 위대한 도약은 '양질전화(量質轉化)'의 법칙을 따른다. 축적된 노력이 일정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질적인 도약과 창조적 영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기록이 내 삶의 강력한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3단계 담금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1단계: 기록 (Record)] ──> [2단계: 되뇌임/자기화 (Internalize)] ──> [3단계: 말과 글 (E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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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상태의 경험/생각] ─────────── (명시화 explicit) ───────────> [고체 상태의 퍼스널 무기]
1.
1단계 - 기록하라 (Record): 펜을 들고 머릿속의 생각을 종이 위에 끄집어내어 일차적으로 고체화한다.
2.
2단계 - 되뇌고 다시 읽어라 (Internalize): 대부분의 사람이 메모에서 멈춘다. 그러나 진정한 기록형 인간은 적어둔 것을 매일 다시 읽으며 애정을 가지고 만지고 상찰한다. 이 과정을 거칠 때 수많은 정보 중 진정으로 중요한 정수(Essential)가 추려진다.
3.
3단계 - 말과 글로 표현하라 (Express): 자기화된 지식을 타인에게 말하고, 완성된 글로 내뱉을 때 비로소 생각은 단단한 퍼스널 무기가 된다.
기억은 담금질할수록 오래 남고, 깊어진다. 기록은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잠재성을 깨워 구체적인 목표와 동기로 바꾸어 놓는 거대한 전환점이다.
2. 사고의 정밀함을 만드는 '생각의 이음'과 '분류(Classification)'
"바둑 기사들은 몇 시간이고 계속되는 경기 내내 생각을 이어 나간다. 바둑 경기의 큰 흐름을 머리에 넣은 채 상대가 어떤 수를 쓸지 예측하고 각각의 수에 대응할 자신의 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것을 '생각의 이음'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의 고민을 관찰해 보면 3초 고민하다 끊기고, 15초 고민하다 딴생각으로 빠지는 식의 파편화된 사고에 갇혀 있다. 생각의 이음이 끊어지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생각을 이어가는 힘이야말로 '생각 근육'을 키우는 리더의 필수적인 능력이다.
생각을 뾰족하고 깊게 다듬기 위해서 책은 두 가지 명확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바로 '분류(Classification)'와 '행위의 순서화'다.
┌── 주제별 세분화 (막연한 질문을 구체적 범주로 분해)
생각의 분류 ├── 행위의 순서화 (1단계 → 2단계 → 3단계 시퀀스 구성)
└── 정밀한 해답 도출 (뾰족하고 실행 가능한 전략 완성)
"코로나19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막연한 질문을 받으면 누구든 뭉뚱그린 답변밖에 내놓지 못한다. 그러나 질문을 "경제적 측면", "사회적 측면", "의료적 측면"으로 세분화하여 분류하는 순간, 머릿속의 얽혀 있던 타래가 풀리며 사고는 뾰족하고 명확해진다.
막연한 문제를 정밀하게 분류하고, 실행의 시퀀스(Sequence)를 부여해 생각을 이어나가는 습관. 이 간단한 생각의 이음을 일주일에 단 세 번만 실천해도, 무질서했던 일상은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전략의 장으로 바뀌게 된다.
3. 한계의 벽을 허물고 '자유의 영토'를 넓히는 결단
"‘나는 그거 못 해’라고 스스로 정해 놓는 사람이 되지 말자. 내 자유를 제한하는 벽을 적극적으로 넘지 않으면 내 자유의 영토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나는 자유의 영토를 넓혀 가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타성과 관성의 벽 안에 갇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야"라며 자기 자신에게 한계의 선을 긋곤 한다. 그러나 스스로 정해버린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인생의 진화와 성장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생의 본질은 나를 둘러싼 벽을 적극적으로 넘어 '자유의 영토'를 넓혀가는 과정이다.
실수를 두려워하거나 지금 당장 잘 못해서 탈이 나면 어쩌나 연연할 필요가 없다. 인생은 길고, 실패와 야단맞음조차 자연스러운 성장의 한 장면일 뿐이다. 하루에 하나씩 내 삶의 꿈과 목표를 머릿속에 각인하고, 작더라도 당장 할 수 있는 루틴을 매일 반복하는 것. 그 작은 습관들이 모여 마침내 나를 구속하던 벽을 무너뜨리고 더 넓은 영토로 나아가게 만든다.
에필로그 :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라
"난쟁이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면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비록 지금의 내가 난쟁이일지라도 매일의 기록이 쌓이면 우리는 그 위에서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과거에 했던 수많은 행동과 선택의 장면들이 모여 '현재의 나'를 만든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남기는 정제된 기록들은 내일의 나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줄 디딤돌이 된다.
남들이 흘려보내는 일상의 조각들을 모아 기록으로 단단하게 고체화하고, 생각을 이어 분류하며, 어제보다 조금 더 넓은 자유의 영토를 향해 나아가는 삶.
내가 남긴 하루하루의 기록이 거대한 디딤돌이 되어, 마침내 그 위에서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는 '거인(巨人)이 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오늘, 어떤 생각의 조각을 고체로 만들어 가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