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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지 않음으로써 깊어지는 밤

—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를 읽고 건져 올린 삶의 온도

1. 소음이 잠드는 시간, 서재에서 묻다

하루의 소란스러웠던 일상이 가라앉고 서재 조명이 은은하게 불을 밝히는 밤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더 큰 목소리로 자신을 증명하고, 더 화려한 간판을 내걸며, 더 조급하게 성과를 과시하라고 부추기곤 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변수가 몰아치는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정작 사람의 마음을 지탱하고 조직을 안심시켰던 것은 요란한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위기 앞에서도 어깨를 늘어뜨리지 않는 묵직한 평
정심이었고, 타인을 배려하며 선을 지킬 줄 아는 정갈한 예의였습니다.
책상 위에 가만히 얹어둔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Habitus)》를 한 장씩 넘기며,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어왔던 ‘참된 품격과 그릇’에 대한 답을 다시금 가슴 깊이 되새겨봅니다.
"누군가에 대해 '그 사람은 급이 다르다'라고 말할 때, 돈이나 출신 배경을 뜻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통 '급'이란 그 인물의 마음의 크기, 즉 '그릇'을 가리킨다."

2. 위기 앞의 따뜻한 평정심: 알파벳은 아직 25개나 더 있다

독일의 전 총리 헬무트 슈미트는 "위기 때 진짜 성품이 드러난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승승장구할 때는 누구나 그럴듯하고 멋진 태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뢰했던 계획이 어그러지고, 예기치 못한 실패가 턱밑까지 차올랐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이 가진 내면의 그릇과 아우라가 드러납니다.
책 속의 한 대목이 오랫동안 마음에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
"큰돈을 벌고 파티를 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 여러분! 속상하지만 일단 식사를 하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이야기해 봅시다'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멋지다."
실패 앞에서 타인을 원망하거나 좌절에 빠지는 대신, 팀원들을 다독이며 "플랜 A가 실패해도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알파벳은 아직 25개나 더 남아있으니까요"라고 담담히 말할 수 있는 유연함.
그런 단단한 회복탄력성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특권이 아닙니다. 매일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며, 내적 근육을 단단히 키워온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태도입니다.

3. 과시하지 않음의 미학: Quiet Luxury와 소탈함

《아비투스》가 전하는 또 하나의 깊은 지혜는 최정상 리그가 지향하는 '조용한 부(Quiet Luxury)'와 소탈함입니다.
실력이 부족하고 불안한 사람일수록 요란한 브랜드나 화려한 지위 상징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애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진짜 실력자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최정상에 도달한 사람은 눈에 띄는 지위 상징이 더는 필요치 않다. 세 가지 새로운 트렌드는 조용한 부, 눈에 띄지 않는 소비, 그리고 애써 과시하지 않음으로써 과시하기다. 이들은 빛나지 않음으로써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
어설픈 자만은 요란한 경적을 울리지만, 깊이 있는 내공은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를 남깁니다.
자신의 위치를 일부러 과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친근함,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소박한 안락함, 그리고 빛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증명하는 절제미. 그것이야말로 세월이 흘러도 결코 바래지 않는 최정상 리더의 참된 품격입니다.

4. 입이 무거운 침묵: 칭찬은 향수와 같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역시 그 사람의 내면을 그대로映照(영조)하는 거울입니다.
"칭찬은 향수와 같다. 향을 내되 코를 찔러서는 안 된다. 설명하지 말고, 불평하지 마라. 당신의 입이 아주 무겁다는 신호를 보내라."
타인을 칭찬할 때조차 교만함이나 과시가 섞이지 않도록 섬세한 감각을 유지하는 것, 남의 험담이나 사소한 소문을 경솔하게 옮기지 않는 엄격한 입의 무거움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신뢰를 만듭니다.
쓸데없이 세상을 가르치려 들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경청의 태도. 자신의 지식을 소란스럽게 자랑하기보다 전체 흐름과 공동체의 발전을 조용히 살피는 안목이야말로 우리가 닮아가고 싶은 어른의 모습일 것입니다.

5. 에필로그: 내면화된 진짜 외투를 입고

어색하게 빌려 입은 가짜 외투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밑천이 드러나지만, 매일의 성찰과 기품 있는 습관으로 내면화된 태도는 그 어떤 위기 속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단단한 진짜 외투가 되어줍니다.
오늘 밤도 서재에서 지성을 정갈하게 가꾸고, 마음의 결을 정돈합니다.
'나는 누구를 아는가'라는 헛된 인맥에 연연하지 않고, '나는 어떤 따뜻함과 깊이로 타인을 안아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밤.
소음의 시대일수록 묵직한 정적과 단단한 태도로 스스로를 증명하며, 빛나지 않음으로써 더욱 눈부시게 빛날 당신과 나의 다음 무대를 조용히 응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