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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의 숭고함에 대하여: 가격의 소음 속에서 인과(因果)를 묻다

타인의 거대한 비극 앞에서 내가 건넬 수 있는 언어의 얄팍함을 깨닫는 순간

머릿속은 그저 먹먹한 침묵으로 가득 찼다.”

"위로라는 단어가 가당치나 할까.

대학 시절, 유독 착하고 선했던 한 후배의 기억이 있습니다.
형들에게도, 동기나 동생들에게도 언제나 마음을 다해 따뜻함을 건네던 참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그로부터 10년쯤 흘렀을까요. 우연히 들려온 소식은 가혹했습니다.
함께 친하게 지내던 또 다른 동료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형만 일단 알고 있으라"는 말에 병문안도 가지 못했고, 그 어떤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위로라는 단어 자체가 가당치나 한 것인지,
감히 내가 타인의 그 거대한 슬픔을 아는 척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그저 야속하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먹먹한 침묵을 지키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예의였습니다.
1. 계산기가 되어버린 세상의 소음
다시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친구를 도우 자는 조심스러운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습니다.
한 친구가 조용히 못을 박듯 차가운 비수를 던졌습니다.
"너 한 달에 얼마 벌어? 걔가 정부에서 받는 돈이 너보다 많을 걸? 도우미도 있는데 뭘 어쩌자고?"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서글픔과 동시에 거대한 질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타인의 삶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심도 있게 생각하고 지껄여대고 있는 것일까.
세상은 그 친구의 무너진 삶을 통장에 찍히는 정부 지원금과 비용이라는 '숫자'로만 재단하고 있었습니다.
결핍이 없으니 염려할 필요도 없다는 지극히 냉소적인 계산기였습니다.
걱정스러우니까, 염려스러우니까 툭 던지는 대책 없는 동정이나,
눈앞의 수치로 삶을 평가절하하는 차가운 냉소나,
결국 당사자의 진짜 마음에는 단 1픽셀도 닿지 못하는 겉도는 소음일 뿐이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오직 '가격'으로만 환산하려는 세상의 민낯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밤이었습니다.
2. 오른손의 묵주, 그리고 인과(因果)의 무게
어머니는 절에 다니시며 자식을 위해 마음을 다해 빌어주시고, 제 오른손목에는 묵주가 채워져 있습니다.
거창한 종교적 교리를 떠나, 저는 삶의 엄정한 인과법칙을 깊이 믿습니다.
내가 타인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
그 악업은 반드시 나의 가장 소중한 궤적으로 되돌아온다는 눈물겨운 진실을 말입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세조나 한명회의 쓸쓸한 말로를 보지 않더라도,
삶은 우리가 살아온 궤적 그대로를 정직하게 되돌려줍니다.
인생을 비열하게 살아온 이들을 봅니다.
오직 사사로운 친분과 내 말을 잘 듣는 사람만을 곁에 두고,
온갖 부조리로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며 세상을 쉽게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 인간들.
하지만 우주의 저울은 공평해서,
그 비열함의 대가는 가장 무고하고 소중한 사람의 안타까운 이별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청산되고야 맙니다.
타인의 눈물을 자양분 삼아 세워진 성벽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며,
그 안에서 스러져간 이들의 업보는 사라지지 않고 공기 중에 낱낱이 기록됩니다.
3. 살.아.있.다 — 진짜 나를 찾는 여정
"살.아.있.다."
이 숭고한 어휘를 가만히 입안에 머금어 봅니다.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숨을 쉬고 있다는 감각을 넘어,
부조리한 환경에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고 내 안의 선한 신념을 지켜내겠다는 뜨거운 선언입니다.
저는 이제 오랜 시간 저를 가두었던 낡은 둥지를 떠나려 합니다.
그곳에서 이룬 성취가 아무리 찬란했을지언정,
비열함이 득세하는 공간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문맥을 과감히 지워내고(Unlearn) 홀로 야생의 트랙 위에 서서 새벽 공기를 마시는 지금,
비로소 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함을 느낍니다.
어설픈 위로나 세상의 계산기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제 안의 정직한 실력과 격(格)으로 온전히 잘되어 보려 합니다.
그것이 내 삶을 증명하는 가장 명예로운 길이자, 묵주를 쥔 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방식일 것입니다.
세상의 소음은 차단되었습니다. 이제 오직 진짜 살아 숨 쉬는 나만의 길을 향해 담담하게 걸어 나갈 뿐입니다.

"낡은 성벽을 떠나라. 진짜 살아 숨 쉬는 가치는 저 너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