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군자는 사귐이 끊어져도 나쁜 말을 하지 않고,
충신은 나라를 떠나도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 합니다."
— 악의(樂毅), 《보연왕서(報燕王書)》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출사표를 던지기 전, 평생을 품에 안고 읊조렸던 최고의 명문이 있습니다.
바로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명장, 악의(樂毅)가 쓴《보연왕서(報燕王書)》입니다.
악의는 약소국에 불과했던 연나라의 총사령관으로 부임하여, 당대 초강대국이었던 제나라의 70여 개 성을 단숨에 함락하고 제압하는 전무후무한 대업을 이룩한 인물입니다.
그는 단순한 장수가 아닌, 전쟁의 거시적 흐름을 설계하고 영토를 넓힌 설계자(Architect)였습니다.
그러나 영웅의 끝은 늘 시기와 질투로 얼룩집니다.
연나라의 혜왕은 간신들의 모함에 넘어가 그를 의심했고, 악의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조나라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습니다.세월이 흘러 제나라에게 다시 역습을 당해 국가적 위기에 처하자, 연나라 왕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악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과거의 일을 사과하며 다시 돌아와 군대를 이끌어달라는 회유였습니다.
그 절박한 회유에 악의가 보낸 답장이 바로 《보연왕서》입니다.
1. 대국의 명장, 품격으로 자존(自尊)을 증명하다
억울하게 쫓겨난 장수가 힘을 얻었을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분노를 쏟아내거나 옛 주군의 실책을 비난하는 것입니다.하지만 악의는 격이 달랐습니다.
"옛날의 군자는 사귐이 끊어져도 상대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나라를 떠나도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배신한 군주를 단 한 줄도 비방하지 않았습니다. 원망과 구차한 변명 대신, 자신이 세운 대업의 자존감과 장수로서의 숭고한 기품만을 묵직하게 전했을 뿐입니다.
얼마 전, 오랜 시간 전선을 함께 누볐던 전 직장의 동료 리더들과 식사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무언가로 세차게 얻맞은 듯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예전부터 마음 한편에는 17년간 청춘을 바친 조직을 떠나온 것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거대한 기득권을 쥔 타인들에 대한 묘한 경계심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마주한 진짜 리더들은 전 직장이나 타인을 결코 탓하지도, 비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성장을 위해 묵묵히 칼날을 갈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낡은 성벽 안의 질서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야생의 전선에서 자신만의 커리어를 개척하고 역량을 개발하는 그 매 순간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2. 안전한 알을 깨고 야생으로 나오다
그 웅장한 태도를 목격한 순간, 깊은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안전한 온실 속에 안주하며, 대기업 수석이라는 타이틀의 사슬에 갇혀 알을 깨지 못하고 있었던 제 자신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끝까지 한 우물만 파는 고루한 충절만이 최선이라 믿었던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인생에서 나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방식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그 위대한 깨달음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과거의 성공 문맥을 완전히 지워내는 ‘언러닝(Unlearn)’을 단행하고, 링크드인과 원티드라는 거대한 광장에 제 이름을 당당히 올린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미나이와 코파일럿 같은 첨단 무기들을 치열하게 독학하며 이 개인 영토를 빌드업한 이유 또한 제 안의 잠들어 있던 거인의 야성을 깨우기 위함이었습니다.
3. 1조 제국을 향한 사령관의 출사표
제나라의 70여 개 성을 정벌했던 악의처럼, 저 역시 17년간 국내 최고의 리테일 영토에서 상권 턴어라운드와 SCM 혁신이라는 압도적인 전과들을 일구어냈습니다. 이제 저는 과거의 훈장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에 제 모든 공력을 던지고자 합니다. 누군가는 17년의 안락한 성벽을 버리고 거친 야생으로 걸어 들어가는 저를 보며 무모하다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진정한 군자는 사귐이 끊어져도 구차한 허물을 돌리지 않으며, 오직 자기가 딛고 선 새로운 영토에서 압도적인 실력과 숫자로 스스로의 격(格)을 증명해 보일 뿐입니다.
5년 내에 1,000명의 정예 인재를 거느린 1조 원의 전문 경영인으로 우뚝 서는 그날까지, 저는 멈추지 않고 전진할 것입니다. 제 인생의 가장 찬란한 제2막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